느리게 쓰기

텀블러를 들고 다녀도 안 쓰게 되는 이유

slowie 2025. 4. 15. 11:14

어두운 나무 책상 위에 검은색 텀블러가 놓여 있다. 옆에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있어 업무 공간임을 알 수 있다. 텀블러에는 'MiiR'이라는 브랜드 로고가 보이며, 일하는 환경에서의 텀블러 사용 모습을 보여준다.

 

 

환경을 위해 텀블러를 구매했지만 정작 자주 사용하지 못하는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거예요. 이 글에서는 텀블러를 사용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이유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해요. 완벽한 환경 실천은 어렵지만, 불완전한 노력에도 의미가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1. 저도 텀블러 세 개나 가지고 있어요

 

텀블러가 저는 세 개나 있어요. 하나는 회사에서 받은 것, 하나는 친구가 선물해준 것, 마지막 하나는 환경 캠페인에 참여해서 받은 것이에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 개 모두 깨끗하게 씻겨진 채로 집 선반에 놓여있거나, 가방 속에 넣어만 두고 실제로 사용하지 않은 채 하루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 그럴까요? 제가 의지가 약해서일까요? 환경에 관심이 없어서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의지도 있고 환경에 대한 관심도 충분해요. 문제는 제 일상 자체가 텀블러를 편하게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에요.


2. 계획보다 즉흥적인 소비가 많은 도시 생활

 

퇴근길에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카페 커피 향기가 풍겨오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하게 돼요. 사실 오늘 커피를 마실 계획은 없었는데, 결국 일회용 컵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손에 들고 말았어요. 가방에는 텀블러가 있었지만, 꺼내려면 복잡한 가방 속을 뒤적여야 했고, 깨끗한 상태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어요.

 

서울에서의 일상은 계획한 것보다 즉흥적인 선택의 연속이에요. 출근길에는 급하게 편의점 커피를, 점심시간에는 동료와 갑자기 카페를 가고, 퇴근 후에는 약속 장소로 가는 길에 테이크아웃을 하게 돼요. 이런 예측하기 어려운 일상에서 텀블러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물건이 되어버려요. 하지만 우리 생활은 항상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지 않아요.

 

카페 카운터에 세 개의 텀블러가 진열되어 있다. 흰색, 검은색, 회색 색상의 세련된 스테인리스 텀블러가 나란히 놓여 있으며, 배경에는 카페 내부와 커피 도구들이 보인다.


3. 텀블러 세척이 민폐가 되기 쉬운 현실

 

카페에서 텀블러를 씻어달라고 부탁하면 직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걸 느껴본 적 있으세요? 뒤에는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데, 제 텀블러를 세척하는 시간이 카페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걸 알면서도 용기를 내어 부탁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로는 그 카페에 텀블러를 들고 가기가 망설여졌어요.

 

한국의 카페는 효율과 속도를 중시해요. 특히 출퇴근 시간대의 카페는 정말 바쁘게 돌아가요. 이런 환경에서 텀블러를 내밀고 세척을 부탁하는 건 흐름을 방해하는 행동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일부 카페는 텀블러 사용을 장려하지만,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다른 경우가 많아요.

 

사무실이나 학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공용 싱크대에서 텀블러를 꼼꼼히 씻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요. 왜 저렇게 오래 씻지, 다른 사람도 써야 하는데 같은 생각이 들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해지더라고요.


4. 혼자서 실천하면 무기력해질 때가 있어요

 

회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 모두가 일회용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저만 텀블러를 꺼내면 어색한 기분이 들어요. 이 작은 행동이 지구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생각하면 복잡한 마음이 들어요. 제가 일 년 동안 텀블러를 써서 줄이는 일회용 컵의 수와, 그것이 전체 쓰레기에서 차지하는 비율, 그리고 제 노력이 환경에 미치는 실제 영향을 생각하게 돼요.

 

이런 생각은 종종 무기력함으로 이어져요. 특히 주변 사람들이 모두 환경보다 편리함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 때, 혼자만의 실천은 쓸데없는 고집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대형 기업들의 일회용품 사용량이나 산업 폐기물의 규모와 비교하면 제 텀블러 하나가 갖는 의미는 더 작아 보여요.


5.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정확히 말하면 포기와 시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때로는 텀블러를 꺼내서 사용하고, 때로는 일회용 컵을 선택해요. 완벽하지 않은 실천이지만, 이런 과정에서 지속가능성이 진짜 무엇인지 생각하게 돼요.

 

지속가능성은 완벽한 실천이 아니라,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계속해서 고민하고 시도하는 마음가짐일지도 몰라요. 텀블러를 쓰다가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나은 방법을 상상하게 돼요. 카페에서 텀블러 세척이 더 편리해진다면 어떨까요? 즉흥적인 소비에도 대응할 수 있는 텀블러 대여 시스템이 있다면 어떨까요? 개인의 실천이 특별한 행동이 아닌 일상적인 모습이 된다면 어떨까요?

 

검은색 텀블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옆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있다. 텀블러에는 'HOPE COFFEE ROSTERS'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카페나 작업 공간에서의 모습을 담고 있다.


6. 실패해도 괜찮은 텀블러 습관

 

텀블러 사용은 항상 또는 절대라는 완벽주의적 단어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가끔, 조금씩, 할 수 있을 때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저는 텀블러를 항상 사용하지 못해요. 하지만 가끔은 성공해요. 그리고 그 가끔의 성공이 모여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든다고 믿어요.

 

중요한 건 실패했다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이해하는 거예요. 텀블러 사용이 어려운 이유를 단순히 귀찮아서로 생각하는 대신, 그 귀찮음이 생기는 사회적, 문화적 이유를 이해할 때 우리는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어요.

 

저는 오늘도 텀블러를 가방에 넣었어요. 오늘은 얼마나 많이 꺼내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요. 실패 속에서도 계속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이 진정한 지속가능성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요.

 

다음에 카페에 갈 때, 텀블러를 한번 꺼내보는 건 어떨까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 실패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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